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까르띠에 탱크 (문단 편집) === 혼란기 (1940년대-1970년대 초) === [[제2차 세계 대전]]이 발발하여 프랑스가 고립되고, 첫째 루이와 막내 자크가 1942년 동시에 사망함으로써 1940년대 까르띠에의 도전정신은 다소 주춤해졌다. 실제로 아래 문단에서와 같이 탱크 시계들을 출시연도 순으로 나열할 때 1940년대에서 60년대는 거의 신제품이 등장하지 않는 공백기임을 알 수 있다. 홀로 남은 둘째 피에르도 머지않아 해외 법인인 뉴욕과 런던 까르띠에를 매각하였고, 나머지 후손들도 차례로 지분을 정리하여 3대에 걸친 창업자 가족경영은 막을 내리게 된다. 창업자 가문이 직접 경영하지도 않고, 형식상 별개의 법인인 파리-런던-뉴욕을 연결하던 혈연 관계도 끊김에 따라 까르띠에 브랜드는 단기 수입에 집중하며 [[라이선스]]를 남발하기도 했다. 1960년대 후반, 2차대전 프랑스의 [[레지스탕스]] 출신인 로베르 오크(Robert Hocq)라는 [[라이터]] 사업가는 자신이 생산한 제품에 까르띠에 로고를 붙여 판매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있었다. 이 제품이 꽤 성공적이어서 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그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[[리치몬트|렘브란트 그룹]](Rembrandt Group)과 제휴하여 1972년, 1974년, 1976년에 각각 까르띠에 파리, 런던, 뉴욕법인을 인수하였다. 삼형제 사망 이후 수 십년만에 세 메종들은 한 지붕 아래 다시 뭉친 셈이다. 함께 까르띠에를 인수한 렘브란트 그룹은 자신의 투자 포트폴리오 중 [[명품]] 브랜드만을 모아 1988년 회사를 분할하였으며, 그 분할된 회사가 오늘날 잘 알려진 [[리치몬트|리치몬트 그룹]](Richemont Group)이 된다.[* 프랑스어기 때문에 '리슈몽'으로 기재하는 게 더 원음에 가깝지만, 국내 법인명을 리치몬트로 등록하였으니 본 문서에서도 이 표기대로 기재하였다.] 한편 1969년 [[세이코]]가 실질적인 최초의 [[쿼츠 시계|쿼츠시계]][* 양산형이 아닌, 프로토타입 발명시점을 기준으로는 1927년 미국이 최초이다.] [[세이코 아스트론|아스트론]]을 출시함에 따라 전 세계 시계시장은 그야말로 혼란과 공포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. 까르띠에의 시계 역시 매출은 하락하였고, [[고육지책]]으로서 자사의 보석이나 펜 등 액세서리를 구매하는 고객들에게 까르띠에 시계를 끼워 팔기도 했다. 그런데 썩어도 준치라고, 사람들은 무려 까르띠에라는 명품 로고가 박힌 이 시계들이 쿼츠 무브먼트 덕에 가격이 저렴해지자 시계만 따로 판매할 수는 없는지를 문의하기 시작했다. 1970년대 초 짧았던 이 혼란기의 탱크 시계들을 소위 프리 머스트(Pre-Must) 탱크라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